실리콘 밸리에는 갑질이 없다.

실리콘 밸리에는 갑과 을의 문화가 없다고 한다. 왜일까?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록펠러는 무지막지한 기업인이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탠더드 오일을 미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기업가로서 악명을 떨쳤다. 경쟁사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잔혹하리만큼 혹독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점기업의 지위에 올라서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런과정에서 그는 많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도 또 많은 소송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련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천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서 많은 사회적 공헌을 했다. (이것도 사실은 논란이 많다.) 자유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진화론을 기업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자 생존 경쟁을 정당화 하는 이론적 바탕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썼다. 그러나 그는 병원과 학교등을 세우는 데도 많은 돈을 썼고 또 의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를 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던가? 록펠러가 사는 시대는 이런 시대었다.

JP 피어폰트 모건은 영국에서 건너와서 미국 금융계의 거물이 된 인물이다. 현대 금융은 이사람을 제외하고는 거론하기 힘들다. 그도 록펠러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무자비한 금융가로 악명이 높기도 하고 또 금융사에 많은 성취를 남긴 인물이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미국 연방은행을 창시하는 주축이었고 또 위대한 기업가와 발명가에게 돈을 대는 투자자 이기도 했다.

니콜라 테슬라는 유럽에서 거의 무일푼으로 뉴욕으로 건너온 전기 공학자이다. 그는 일론 메스크가 흠모하여 테슬라 자동차를 명명할 정도로 전기와 무선 통신 분야등에서 위대한 발명을 한 공학자이고 미래학자였다.

JP 피어폰트 모건은 한때 니콜라 테슬라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였으나 그가 상업적 성과보다는 혁신적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거듭된 실패를 하자 그에 대한 투자를 거두면서 니콜라 테슬라는 거의 파산에 이르게 된다.

니콜라 테슬라는 웨스팅 하우스에 그가 많든 교류 발전기에 대한 특허료를 계약하고 나이에가라 폭포에서 생산되는 전기에 대한 수익을 분배받기로 했는데 위스팅 하우스가 과도한 투자로 어려워지자 그 특허료 계약을 파기해 줌으로써 웨스팅 하우스를 살렸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만일 그가 이 계약을 웨스팅 하우스를 위해 파기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빌게이츠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웨스팅 하우스가 해준 일이라고는 그의 호텔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테슬라의 천재적 발명과 기술로 발전한 전력산업과 통신산업은 뉴욕을 첨단 산업이 꽃피우는 도시로 성장하게 했다. 벨 그레이험은 전화기를 발명하고 AT&T를 설립하여 승승장구 하였고 에디슨도 활발한 발명과 기업활동을 하였다. AT&T는 자사의 특허가 만료되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벨연구소(AT&T Bell Lab)을 뉴욕의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세웠다.

뉴욕은 유럽에서 넘어온 과학자 발명가 금융가가 뒤엉킨 활발한 혁신의 도시였다. 그러나 JP 피어폰트 모건이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에디슨의 사업적 재능이 니콜라 테슬라의 혁신가적 기질을 누르고 큰 사업적 성공을 거둔것(에디슨은 직류 전기를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전기를 주장했으나 결국 테슬라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고 교류전기를 쓰고 있다. )과 뉴욕이 금융과 상업의 도시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실리콘 밸리의 태동이다. AT&T에서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던 쇼클리는 AT&T를 박차고 나와서 쇼클리 반도체를 세울 계획을 한다. 관료적으로 변하는 뉴욕보다는 자신이 유년시절에 살던 그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펠로엘토의 살구 과수원으로 유명한 한 시골로 가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 근처에 자리잡은 스탠포드 대학의 학장인 프레드 터먼 교수는 대학 소유 토지에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터먼 교수는 쇼클리가 회사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스탠포드 근처에 위치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쇼클리 반도체는 그곳에 설립되게 된다.

터먼 교수는 기업들의 경영진과 연구원들이 스탠포드에서 강의하거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고 또 교수들도 기업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문화의 씨았을 뿌렸다.

쇼클리는 AT&T Bell Lab에서 연구원들을 스카웃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쉽사리 신생 스타트업으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기업들에서 인재를 아름아름 모집하였다.

이때 모인 사람들이 바로 그 유명한 무어의 법칙을 만든 고든 무어 등 나중에 8인의 배신자라는 실리콘 밸리의 전설들이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말도 이런 전통에 따라 만들어 졌다고 생각된다.)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만드는데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좋은 경영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쇼클리 반도체에서 근무하던 많은 우수한 연구원들이 그곳을 떠나고자 했다.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이며 벤처캐피탈을 태동시킨 아서록이다. 그는 쇼클리에서 나와서 새로운 모험을 하려는 연구원들에게 투자자를 물색하다가 셔면 페어차일드를 소개한다.

세먼 페어차일드는 IBM의 대주주이기도 하였고 아버지가 IBM의 co-founder였다. 쇼클리 반도체를 나온 연구원들은 페어차일드를 크게 성공시킨다. 그러나 큰 성공뒤에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관료주의가 다시 엄습해 오고 있었다. 또한 큰 조직에서는 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도 없었다. 마침 투자 계약조건에 의해 페어차일드 카메라 인스트루먼투가 페어차일드를 인수하자 그들은 다시 새로운 모험을 결심한다. 8인의 창업가가 8인의 배신자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고 또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다시한번 아서록의 투자를 받아서 인텔이라는 회사를 만든다. 인텔은 이제 비로서 연구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회사를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동부의 관료적이고 상하관계가 분명한 그런 조직이 아니라 실력중심의 수평적인 회사를 만들었다. 임원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도 주자장도 없었다 모두 똑같은 공간에서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그런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든 것이다.

이런 전통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모든 직원이 똑같은 크기의 책상에서 일했고 회장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나 사무실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차를 손수 운전했고 동네의 맥도널드에서 그를 보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비행기도 이코노미클래스만을 탓다고 한다.

이런 역사와 전통이 바탕위에서 실리콘 밸리는 탄생하였다. 그리고 인텔의 문화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등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페이스북의 마크저크버그의 멘토중의 하나가 바로 스티브 잡스다.

한국 재벌 대기업들은 이런 역사와 전통이 없이 일본의 재벌을 모방하여 성장했기 때문에 갑질과 하청업체를 부리는 문화가 만연하다. (그러나 미국도 록펠러시대에는 그런 것이 만연했다. )

그러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더이상 갑질이 없고 갑과 을의 문화도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이런 긴 역사를 거치면서 성숙된 기업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실리콘 밸리는 이런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애플의 앱마켓은 갑질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통신사들을 한방에 무너뜨렸다. 이제 많은 앱 개발사들은 통신사들의 갑질로 부터 해방되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 밸리 기업들도 새로운 가치를 시장에 던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테슬라가 기존 자동차 시장에 던지는 신선한 충격에 소비자들은 다시 열광하고 있다.

이제 갑질은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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